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피트 도허티 (문단 편집) === 출생과 유년기 그리고 대학 입학까지 === 어렸을 때부터 장신이었다. 또래 남자애들이 소년 시기에는 키가 소녀들에 비해 작은 것에 비해 항상 반에서 앞에 설 정도로 키가 컸다고 한다. 신기한 건 피트의 아버지도 피트만큼 장신은 아닌데, 피트가 특히 키가 크다. 책에 의하면 피트가 전형적인 강아지 눈매에 순수하게 생긴 얼굴이어서 어렸을 때부터 연예인이나 모델 하라는 제안을 수도 없이 들었다고 한다. 물론 도허티의 어머니는 아직 성장이 미숙한 아이의 정서상 좋지 않다고 판단해 절대로 그런 사진 촬영이나 연예 관련 일은 시키지 않았다고. 피트 도허티는 1992년~1997년 중고등학교 시절을 잉글랜드 워릭셔의 Nicholas Chamberlaine School에서 다녔다. 참고로 위키피디아에 이 학교를 검색하면 피트 도허티가 동문으로 걸린다. ||[[파일:external/pbs.twimg.com/2114369267_e9ec2bf8e5_o.jpg]]||[[파일:j99c0lq.jpg|width=75%]]|| 출생지는 영국 잉글랜드 노섬벌랜드 주(Northumberland) 헥삼(Hexham). 본가는 아일랜드다. [[영국군]]의 장교였던 아일랜드인 아버지와 군 간호사였던 유대인 어머니 사이에서 1남 2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원래 도허티(Doherty)는 [[아일랜드어]]로 오 도허티(Ó Dochartaigh)라고 읽는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영어화가 되면서 도커티라고 읽는다[* 아일랜드의 성씨에서 20위권 안에 들어갈 정도로 많은데 특히 얼스터 지방의 도니골 주에 가장 많다. 참고로 오닐(O'Neill), 갤러거(Gallagher), 도허티(Doherty), 매클로플린(McLaughlin), 오도널(O'Donnell), 보일(Boyle), 스위니(Sweeney), 도널리(Donnelly), 케인(Kane)도 얼스터 지방에 많은데 특히 오닐, 도널리, 케인을 제외한 나머지 성씨는 모두 도니골 주(오닐과 도널리는 티론 주, 케인은 런던데리 주)에 가장 많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9개의 성씨 모두 하나의 조상에서 파생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므로 현지인[* 주의! 여기서 이야기하는 현지인은 '''아일랜드''' 사람들. 마찬가지로 갤러거란 성도 갤러'''허'''라 읽는다.]들은 [[A라고 쓰고 B라고 읽는다|도허티라 쓰고 도커티라 읽는다]][* 유명한 할리우드 배우인 섀넌 도허티도 역시 같은 성씨다. 물론 어디까지나 성씨만 같은 뿐이지 실상은 서로 남이다.]. 그러나 본인의 정체성은 '''철저한 런더너다'''. [* 애당초 리버틴즈란 밴드 자체가 잉글랜드성을 추구한다.] 군인이었던 아버지의 직업 특성상 집을 여러 번 옮겨 다녔는데, 런던부터 도싯, [[리버풀]], 요크셔, [[북아일랜드|벨파스트]], [[서독]], [[키프로스]] 등 안 다닌 데가 없다보니 정서적으로 굉장히 불안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이었고 실제로 늘 외로워해서 항상 마음이 맞는 친구를 갈망했다고. 다만 그가 어렸을 때부터 불우한 거리의 아이, 천상 음악가라는 건 가공된 이미지이며 공부 열심히 하고 착실하고 적당히 놀던 우등생이었다. 피트 도허티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듯 어쩔 수 없이 음악에 몰두하게 된 노동계급이 아니라 되려 중산층 출신이며, 학창시절에는 나름 계급에 맞게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즉, 본인의 의지와 철저한 노력으로 음악에 입문했다고 보는 게 맞다. 여담으로 어렸을 때 장래희망은 '''시인'''이었다 한다. 학창시절의 성적은 그의 지적인 면모를 잘 보여준다. 영국 GCSE에서 총 11과목에서 7과목은 A+, 4과목은 A를 받았고, [[GCE Advanced Level]] 4과목을 쳐서 2과목은 통과, 2과목은 A를 받았다. 런던 대학교 소속 퀸 메리 대학교 [[영문학과]]에 입학했다.[* 런던 대학교 영문학과에서는 --선배 취급 안 해줄 것 같지만-- 엄연히 선배로 인정해준다. 여담으로 해당 대학은 [[타임스]] 조사 예술 및 인문학 분야 세계 21위 대학교.] 그러나 이 시기 마찬가지로 브루넬 대학 연극학과 신입생이었던 칼 바랏을 만나게 되고 무려 1학년 때 중퇴한다. 그리고 '''리버틴즈 결성''' 학창시절에는 중산층 입지에 걸맞게 살았다고 볼 수 있으나, 밴드 결성 전후 몇년간 겪은 숱한 일화를 바탕으로 분석해보면 도허티가 노동계급 취급을 받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보인다. 16살이던 1995년에는 영국 교육부에서 주관하는 문학상에 '''시 부문으로 입상'''하여 국비장학생으로 러시아에 유학 간 적도 있다. 그 때 시상 받은 시가 '''Albion'''. 사실 노래 가사만 봐도 공부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일단 대단한 책벌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춘기 때부터 [[마약|약]]을 달고 살았다.[* 데뷔 초기 독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정말 부끄러워하며 고백했다.] 그리고 그렇게 중독자의 인생을 시작한다. [[크랙 코카인]]과 [[헤로인]]을 동시에 했다고[* 마약 복용 습관 중 가장 막장이라고 볼 수 있다...]. 거의 '''만성적 마약 중독 말기 증상 ''' 수준이었다고 보면 된다. 칼 배럿도 약은 했지만 도허티의 이 습관은 정말 싫어했다고 한다. 다행히도 2013년 들어 재활에 성공해서 마약은 이제 손도 안댄다고. 도허티가 원래 끊을 때 딱 끊고 다시 시작할 때 폭풍 흡입하는 식으로 마약을 해대는 스타일인데, [[헤로인]]이나 [[코카인]]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이게 심장마비 오기 쉬운 방법이다. 이런 스타일로 약을 해댄 가수들이 '''[[지미 헨드릭스]], [[롤링 스톤즈|키스 리처즈]], [[시드 비셔스]], [[커트 코베인]], 그리고 도허티 본인의 절친이었던 [[에이미 와인하우스]]가 있다.''' 이 여섯 중 셋이 심장마비 및 그 후유증으로 떠나버렸다. 난잡하고 화려한 매스컴의 조명 한편으로 피트 도허티라는 뮤지션은 젊었을 때 여느 뮤지션과 똑같듯, 97년 첫 밴드를 결성했을 때부터 음반사와 계약을 맺기 위해 무려 5년간이나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숱한 좌절과 실패를 다 겪어본, 그래서 데뷔 당시부터 노련할 수밖에 없었던 베테랑이었으며, 2000년대에 스트록스에 대항할 영국의 실낱같은 희망이었으며, 당시 숱한 영국 십대 록 키드들에게 기타를 치게 만들게 해준 대단한 사람이다. '''스트록스의 [[Is This It]]과 리버틴즈의 [[Up the Bracket]]은 사실상 런던 인디 씬을 통째로 바꿔버린 앨범들이며,''' [[NME]]가 리버틴즈에 대한 병적 집착을 시작하기 이전에, 왜 그들이 리버틴즈가 뜨기 '''한참 전인 1999년부터''' 눈독을 들이며 주목하게 되었는가를 생각해보면 그 답이 나올 것이다. NME는 분명 하이프 전문 잡지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도 가지고 있으나 그들이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 씬에 발휘한 안목은 가히 영국 인디만 50년간 다룬 인디 대가의 솜씨였다. 다시 말해 리버틴즈 역시 런던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다. 많은 과오와 실수에도 불구하고 피트 도허티가 영국 인디 씬에서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이유는 '''본인이 그만한 업적을 이루었기 때문이지 수려한 외모나 뽐내며 마약을 했기 때문이 아니다.''' 다시 말해 이미지와 카리스마가 강한 인물인 건 사실이지만, 그 뒤에는 '''모든 뮤지션들이 다 그렇듯 보이지 않는 노력이 있었다는 것.''' 리버틴즈를 비롯해 스트록스도 그렇고 후발주의자 악틱 몽키즈도 그렇고 모두들 데뷔 전에는 가난과 실패에 매달려야 했다. 설사 그들이 가난한 서민 출신이 아니더라도. 그리고 무엇보다 그가 일 년에만 수십 개씩 작고 큰 규모의 공연을 돌며 감을 유지하는 현역 뮤지션이라는 것이다.[* 참고로 리버틴즈가 데뷔했던 2002년에는 '''한 해 동안 약 100개 공연을 소화해냈다.''' 이 정도면 아이돌 그룹 굴리는 혹사 수준이다.] 복잡하게 생각할 거 없이 이 페이지는 피트 도허티의 마약과 과오에 대해 정확하게 서술하는 바, 마찬가지로 그 때문에 가려진 리버틴즈 및 베이비솀블즈 등 피트 도허티 본인의 음악적 가치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방향으로 편집되어야 할 것이다. [youtube(Quba72Xli8o)] ||(인터뷰어): 소시지 크라상까지 준비해놓고, 얼마 동안 줄 서 있었어요? (피트): 최소한 17분요. (인터뷰어): 오늘 처음 와서 줄 선거죠? (피트: 네.) (인): 한 문장으로 오아시스에 대해 설명해보실 수 있겠어요? (피트): 네, '''[[움베르토 에코]]'''[* 참고로 이 때 피트는 런던대 영문학과생이었다. 흠좀무. 그런데 움베르토 에코는 리암 갤러거를 신랄하게 까기 위해 괜히 점잖은 척 집어넣은 것이다(..)]식으로 말하자면, 노엘은 '''시인'''이고 리암은 '''동네 바보'''죠.(인터뷰어 웃음) 덤앤더머 콤비 같은 거죠. (다시 카메라를 향해 크게 말함) (인): 한 문장으로 오아시스를 요약하자면? (피트): 멜빵바지요.[* 그냥 아무렇게나 대답한 것이다. 영어식 조크] (인): (웃음) 나중에 MC같은 거 하고 싶어요? (피트: 끄덕끄덕) 이거 똑똑한 친군데? || 97년 [[오아시스]] 3집 [[Be Here Now]] 발매일 당시 앨범을 사기 위해 줄을 서 있는 중에 영국 [[MTV]]에서 구매자 인터뷰를 진행하는 중의 18살의 영문학도 대학생 피트 도허티. 시기적으로 칼 바랏과 만난 지 채 1년이 좀 안 되었으며 이즈음 '''벌써 리버틴즈를 결성했을 가능성이 높다'''. 2007년에 BS 2집 프로모를 돌 때 프랑스 프로그램에서 저 화면을 강제공개(..)당한 적이 있는데 피트 도허티는 흑역사로 생각하는 것 같다(..) 본인도 알았을까. 불과 5년 후면 [[노엘 갤러거]]한테 친히 평가받게 될 줄을.~~그리고 [[리암 갤러거]]의 여자 친구랑 사귀게 될 줄을[* 심지어 피트 도허티의 아들을 낳은 여자는 리암 갤러거의 딸을 낳았다.]~~ 군대 문학을 좋아한다고 한다. 그래서 러디아트 키플링을 비롯한 영국 군대 문학 인용을 찾아볼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